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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 순천시 송광사(松廣寺)

순천 '조계산' 자락에는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사찰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암사(仙巖寺)'이며 나머지 하나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송광사(松廣寺)'입니다.


'송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대한민국 3대 사찰로 꼽히는 사찰이다.
주소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로 자가용으로 여행을 하는 경우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 IC에서 내려서 20여분 주행하면 도착할 수 있다.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시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이었고 이후 고려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옮겨와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산이름도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수선사에서 송광사로 바뀌어 조계산 송광사가 되었다고 한다.

'통도사'가 '불지종찰, 구지대찰', '불보사찰(佛寶寺刹)'이라 불리고 '해인사'가 '법보종찰', '법보사찰(法寶寺刹)로 불리우듯이 '송광사'는 '승보종찰',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리운다.
불교의 참으로 귀하고 값진 보배인 삼보(三寶)인 부처님(佛), 가르침(法), 승가(僧)를 가리키는 삼대사찰을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하는데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송광사'의 입구는 '해인사'와 '통도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일주문'에 도착하기 전에 큰 주차장과 많은 식당가와 숙박시설이 있다. 찾아오는 이가 많아서 그러하겠지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식당이 밀집된 곳을 지나면 산책길이 매표소까지 나있는데 도착했을 때가 겨울 아침이라 며칠 전 왔던 눈이 아직 녹지 않았었다.


사찰을 돌아다닐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문화재 구역 입장료'만 보면 그 사찰에 문화재가 얼마나 있는지 사찰에 볼거리가 많은 지를 미리 지레짐작할 수 있다. '송광사'의 입장료는 성인 2,500원으로 그리 비싸지도 저렴하지도 않는 가격... 참고로 '화엄사'가 3,000원이었음을 생각해보면 그보다 볼거리가 적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매표소의 좌측에는 '송광사'를 설명하는 글과 가람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담겨있는 구조물이 있으니 꼭 읽어보고 들어가길 바랍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가는 길은 사람이 걷는 '인도'와 차량이 진입하는 '차도'로 나뉘어져 있었다. 들어갈 때에는 인도로 들어가 나올 때에는 차도로 나왔는데 그 길이 그리 길지 않아 약간은 아쉬웠다. '통도사'와 '해인사'의 '일주문'까지의 길과 계속 비교가 되는데다가 지난 여름에는 '월정사'까지 다녀온 터라 나의 기대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했다. 눈이 너무 높아진 것이 아닐까...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僧寶綜刹 曹溪山 松廣寺)




인도에 눈이 녹지 않아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올라가니 차도와 다시 합쳐져 '일주문'까지 길이 나 있었다.
'일주문'에 도착하기 전까지 좌측에는 '조계산'에서 내려오는 넓지 않는 계곡이 있고 도중에 좌측 편에 '전통찻집 다송원'이 보인다.
아침 일찍 도착한 터라 아직 찻집의 문을 열지 않아 따뜻한 차한잔으로 몸을 녹여보려 했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았다.
'전통찻집' 맞은 편에는 '추모비'들이 모여 있었다. '부도전'이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찾지 못했다. 다음에 여름을 기약한다.

전통찻집



전통찻집을 지나면 '하마비(下馬碑)'가 '송광사' 안내도와 함께 길의 좌측편에 보인다.
'하마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부터 실제 사찰로 들어가는 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로 사찰을 방문한 이는 누구나 여기서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집에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마비'에서는 '일주문'이 보인다. 동은 텃으나 해가 하늘로 오르지 않은 터라 어두웠다가 가람을 보고 나올 때 해가 뜨기 시작해 색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가람을 다 보고 내려올 때 쯤 '일주문' 앞에서 찍은 사진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송광사'의 '일주문'은 편액이 푸른 바탕에 금색으로 쓰여진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曹溪山 大乘禪宗 松廣寺)' 현판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목조 장식에 약간은 빛이 바랜 단청이 오히려 더 고풍스러움을 보여준다. 이는 중국의 황실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며 편액이 가로로 달리지 않고 종서로 쓴 점도 다소 특이하다. 
안쪽 현판에는 '승보종찰 조계총림(僧寶宗刹 曹溪總林)'라고 한국의 5대 총림 중 하나임을 알려주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계곡을 건너 가람들이 보이며 앞으로는 작은 가람 두채가 보인다.
좌측에 먼저 보이는 가람이 '임경당'이다. 그리고 그 다음 계곡을 건너는 다리로 본채의 '천왕문'과 이어지는 '우화각'이 있다.
사실 여름이 되면 맑고 찬 물이 '우화각'아래를 지나 '임경당' 옆을 지나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송광사'의 대표적인 모습인데 겨울이라 물이 얼어 붙어 있어 그런 모습은 담지 못했다. 올해 여름에는 다시 갈 곳이 또 생겼다.



예전에는 '해우소'로 가는 다리가 없이 다리아래 보이는 돌다리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단다....역시 좋은 곳을 일찍와서 변하기 전에 사진으로 담아 놓아야 한다. 돌다리 사이로 물이 떨어지면서 아래에서 좋은 사진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화각'을 멋있게 담으려면 다리 위에서 찍으면 될 것을 왜 이날은 그냥 지나쳤는지 지금 후회한다.
'우화각'은 '삼청교'위에 지어진 건물로 '천왕문'까지 갈 수 있게 계곡을 건너 지어져 있다. '우화각'의 천장에는 '송광사'라는 파란 바탕의  흰 글씨로 편액이 하나 적혀있다. '송광사'의 또 다른 포인트로 편액들이 약간은 특이하며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며 이는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우화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조그마한 가람 2채가 보이는 데 '세월각(洗月閣)'과 '척주당(滌珠堂)'이다. '송광사'에서 아니 내가 다닌 사찰 중에 가장 작은 건물이다. 용도는 알아보니 천도재를 지내기 위한 영가들의 관욕소라고 한다. 여기서도 불교의 남녀 차별이 나타나는데 '척주당'은 '대웅보전'을 향해 배치되어 남자 영가가 사용하는 곳이며 '세월각'은 '일주문'을 향해 배치되어 여자 영가가 사용하도록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우화각'의 우측에는 계곡을 따라 '사자루(獅子樓)'가 길게 배치되어 있다. 바깥쪽에서 본 현판에는 '침계루(枕溪樓)'라 적혀있는데... 안쪽은 출입이 금해져있는 곳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사자루' 아래로 한마리 미물이 얼어붙은 계곡 위로 그의 족적을 남겼다...



'우화각'을 지나면 '천왕문'을 지나갈 수 있으나 보수작업 때문에 '천왕문'을 구경하지 못하고 '사대천왕'을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었다. '송광사'의 '사대천왕'들은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보수 중이라고 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송광사 불교 전문 강원(松廣寺 佛敎 專門 講院)'이라는 세로 현판을 만나게 되는데 아마 '법성료'와 '사자루'사이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인 것으로 생각된다.


'천왕문'에서 정면으로 '종고루(鐘鼓樓)'가 보이며 '종고루'의 아래 계단을 통해 '대웅보전'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종고루'에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 등 불전사물(佛前四物)이 봉안되어 있다. 이전에는 '종고루' 자리에 '해탈문'이 있었다고 한다.



'범종루'의 좌측에는 '성보각(聖寶閣)'이 있어 '성보박물관'의 역할을 하는데 도착했을 때, 이달의 선시와 함께 '송광사'의 가람을 산에서 내려다 본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성보각'의 옆으로 돌아올라가도 '대웅보전'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돌아가는 길에 '해우소'를 볼 수 있다. '성보박물관'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도성당'과 '중현당'이 보이지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어서 멀리서 한 컷 찍어보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가람의 수가 많은데 조밀하게 모여있다는 느낌이 든다. 산에서 내려다 본 사진에서도 확실하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성보각'에 걸려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해우소




'대웅보전'이 있는 '송광사'의 안마당에는 '대웅보전'을 주위로 '승보전(僧寶殿)', '지장전(地藏殿)'로 둘러싸여져 있다.
우선 만나게 되는 '승보전'은 '대웅보전'을 쳐다보았을 때, 좌측에 위치한 가람이다. 지금의 '대웅보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대웅전'의 역할을 한 가람으로 현재 '대웅보전' 위치에서 지금의 '승보전' 위치로 옮겨진 건물이다.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가람이다.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우측에 '지장전'이 배치되어 '승보전'과 함께 '대웅보전'의 양쪽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대웅보전'은 '송광사' 가람배치의 중심에 위치하는 가람으로 가람의 모양이 '아자형(亞字形)'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이다. 이전에 통영 '미래사' 소개에서 '아자형 범종루'는 소개한 적이 있으나 '대웅전'이 '아자형'으로 지어진 구조는 유일하다고 한다.
여기서 '대웅보전'의 의미를 설명하면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대웅'이라 칭하여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가람을 말한다.






'대웅보전'의 앞마당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람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하나는 '약사전(藥師殿)'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산전(靈山殿)'이다. '약사전'은 보물 제 302호, '영산전'은 보물 제 3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나... 도착 당시에는 내부를 관찰할 수 없어 가람의 외부만 보고 왔다. 이 두 가람의 편액 또한 파란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적혀있어서 '일주문'의 그것과 동일한 양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대웅보전'의 좌측 상단에는 '관음전(觀音殿)'이 위치하고 있다.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를 맞아 임금이 '성수전(聖壽殿)'이라고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려 황실의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이전의 '관음전'이 해체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관음전'이 되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해 일반 사찰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송광사'만의 '관음전'으로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촬영은 절대 안한다는 철칙때문에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송광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건물이 한 채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한 '국사전(國師殿)'이다. '국사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하사당(下舍堂)'과 함께 '불이문(不二門)'을 지나야 볼 수 있는데 일반인은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있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불이문'만 사진에 담아왔다. 참고로 '송광사'에는 '불이문'도 있고 '불일문(佛日門)'도 있다.



'송광사'의 최상단은 '관음전'의 뒷뜰로 '불일 보조국사 감로탑(佛日 普照國師 甘露塔)'이 위치하고 있으며 '송광사'를 아래로 쳐다볼 수 있다. 여기서 내려다 본 파노라마 사진을 함께 붙여 본다.



'송광사'의 '일주문'을 떠나면서 올해 여름을 기약하며 계곡으로 내려가 사진하나를 남겼다. 올 여름에는 흐르는 물과 푸른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송광사'를 사진에 담으리라고 약속을 하면서...

'송광사'는 '아자형'의 특이한 가람배치 때문에 많은 수의 가람에도 불구하고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때문에 처음에는 대한민국 '삼대사찰'이라기에 조금 모자란 듯 느껴졌지만 구석구석 다니면서 아담하면서도 그 뒤에 감춰진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계에 따라 피는 나무와 꽃들, 그리고 단풍이 아름다워 언제 방문하더라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좋은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